[어느 젊은 국문학자의 죽음] "박사논문 쓰다가 죽는 사람도 있다" > 관련뉴스

본문 바로가기
서울논문컨설팅 / 무료상담 010-2556-8816
신뢰할수 있는 서울대 박사님들이 함께합니다. seoulpaper@daum.net, 02-715-6259


Home > 논문초보 > 관련뉴스
관련뉴스

[어느 젊은 국문학자의 죽음] "박사논문 쓰다가 죽는 사람도 있다"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42489 

[한국대학신문 이재 기자] 지난달 5일 젊은 국문학자 박모(38)씨가 의정부 호원동 아파트 아래로 몸을 던졌다. 16층에서 떨어진 박씨의 몸에서는 신분증과 짧은 유서만 발견됐다. 유서에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겠다고 써있었다. 자살동기를 유추할 근거는 없었다. 이튿날 언론은 박씨의 죽음을 짧게 보도했다.

 

박씨는 활발하고 외향적인 성격이었다. 농담도 잘했다. 서평을 인터넷 신문사에 쓰기도 하고 이미 다수의 글을 학술지에 싣기도 했다. 촉망받는 젊은 학자였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양친의 외아들로 서울 전농동에서 혼자 생활하던 박씨는 죽기 직전 렌트카를 빌리려다 취소하고 홀연히 의정부로 가 몸을 던졌다. 5일은 숨진 박씨가 학위과정을 하고 있는 A대의 국문학 박사논문 제출마감일이었다.

 

박씨는 평소 지도교수에 대한 불평을 주변에 자주 토로했다. ‘미치겠다’ ‘죽겠다’는 말도 했다. 박사학위 논문을 받지 못하면서 박씨는 그간 비박사자격으로 하던 A대 강사자리에서도 밀려났다. B전문대학 주·야간 강의를 맡았지만 학위가 없이는 그마저도 위태로웠다.

 

박씨는 3년에 걸쳐 논문을 준비했다. 논문의 주제는 한국 현대시에서 나타나는 도시적 감성의 형성에 관한 연구다. 그의 컴퓨터에서는 완성하지 못한 논문의 조각들이 발견됐다. 그는 들뢰즈를 이용해 현대시를 분석했다. 김기림과 이상을 비롯한 다수의 현대시인을 대상으로 했다. 그가 택한 들뢰즈는 각광받는 분석이론은 아니다. 비주류에 가깝다. 그러나 젊은 학자들을 중심으로 지젝과 들뢰즈를 이용한 분석연구는 활기를 띄고 있다.

 

그러나 논문을 쓰면서 박씨는 주제를 바꿨다. 김기림과 이상, 정지용, 김광균을 분석하려던 시도를 접었다. 그의 컴퓨터에 저장된 논문초안을 보면 2012년까지 4명의 시인을 분석하던 논문은 2013년부터 분석대상을 김기림 한명으로 압축했다. 논문의 이름도 ‘김기림 시의 도시적 감성 연구’로 바뀐다.

 

박씨와 함께 탈근대철학회라는 세미나모임에서 활동한 엄모(34)씨는 “기성학계가 새로운 이론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 특히 들뢰즈나 지젝 등 급진적인 서양이론으로 국문학을 분석하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탈근대철학회에서 활동하는 또다른 국문학자 김모(49)씨는 “주제를 왜 바꿨냐고 물으니 ‘지도교수가 그렇게 하라고 했다’ ‘모르겠다’고 하더라”며 안타까워했다.

 

엄씨는 “박사논문을 쓰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지도교수를 만나고 나오면 평소와 달리 분노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고 말했다. 한 차례 지도교수를 바꾸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김씨는 “숨진 박씨의 선배들은 들뢰즈를 분석이론으로 삼아 박사학위를 받은 경우도 많았다. 근데 당시 지도교수들은 박씨가 논문심사를 받기 전에 모두 퇴임했다”고 말했다.

 

지도교수 교체가 안되자 논문 외부 심사위원을 바꾸려고도 했다. 외부 심사위원 중 한 교수가 한 학술대회에서 언쟁을 벌인 바 있는 교수였기 때문이다. 김씨는 “밝은 사람인데 논문 스트레스가 극심했는지 ‘미치겠다’ ‘죽겠다’는 말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으레 하는 말이겠거니 하고 넘겼다. 박씨는 그 말을 가족에게도 했다.

 

박씨의 어머니 허모씨(62)는 박씨가 숨지기 이틀 전인 11월 3일 저녁 박씨와 전화하다가 “박사논문을 준비하다가 죽는 사람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통화는 곧 끊겼다. 이튿날인 4일 아버지 박모씨(65)가 아들에게 전화를 해보라며 채근했지만 하지 않았다. 논문을 쓰는 아들에게 방해가 될까봐서였다.

 

박씨의 장례식에 지도교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박씨의 지도교수는 수능출제위원으로 선발돼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허씨는 박씨가 다니던 대학을 찾았지만 조교만 보고 돌아섰다. 조교는 “교수가 곧 연락할 것이다”고만 했다. 허씨는 “논문을 쓰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냐”고 혼잣말같이 말했다.

 

지도교수는 동료 3명과 함께 지난달 23일 청주를 찾아 박씨의 부모를 만났다. 교수들은 숨진 박씨가 평소 우울증이 있었는지 물었다. 성격은 어떤 편이었는지도 물었다. 지도교수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섯 사람의 대화는 약 2시간 가량 이어졌다. 교수들은 숨진 박씨가 안치된 청주 목련원을 찾으려 했지만 납골당 참배시간이 지나 서울로 올라갔다.

 

박씨와 지도교수의 관계에 대한 증언은 엇갈렸다. 허씨가 만난 대학원 조교는 ‘끼고 살았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박씨와 가까운 지인들은 박씨가 지도교수를 무척 꺼렸다고 입을 모았다. 둘 사이에는 끝내 미완으로 남은 논문만 남겨졌다. 지도교수는 박씨에 대한 질문에 “죄송하다. 할 말이 없다”고 전화를 끊었다.

<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

 

코멘트: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습니다.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매우 심각한 스트레스의 상황을 경험하는 것은

매우 빈번한 과정이며,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과정은 통과의례라 여겨질 수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학위취득을 잠시 유예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학위취득연한이 있지만,

이후에 지도교수의 사인하에 재입학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지도교수의 연령이 높아서 은퇴의 시기가 남았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기 보다는

잠시 쉬었다가 향후 시도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인생은 보다 아름답고 흥미롭고 관심을 가질만한 것들이

많습니다. 학위는 그 중에 하나일뿐이지 모든것이 절대 될 수 없습니다.

 

또한가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결함이 많은 인간에 대한 연민입니다.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고 비합리적인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도 그러하지만 교수나 또는 다른 누구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지와 절대지식의 중간자들이 만나서 이루어내는 관계는

더욱 모순과 불합리와 부조리가 있을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그것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할 뿐이고 그것이 

어쩌면 인간의 신비적 영역에 포함된 것일수 있습니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세요.

지금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닐었을 수 있습니다. 

 

 

"강해서 살아남은것이 아니라, 살아남았기 때문에 강한것이다" -찰스 다윈-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 착취도 모자라 대리답안까지‥'절망'의 대학원생 서울논문 01-19 1385
3 저널에 실은 논문으로 박사학위하면 자기표절이다?? 서울논문 09-21 21837
2 대학·교수 갑질에 7년째 박사과정 서울논문 09-13 2495
열람중 [어느 젊은 국문학자의 죽음] "박사논문 쓰다가 죽는 사람도 있다" 서울논문 11-29 1893

대표:이광조ㅣ사업자등록번호: 643-09-02202ㅣ대표전화: 02-715-6259ㅣ서울시 용산구 효창원로 188